우리미술관 개관전 : 집과 집 사이 - 철, 물, 흙


우리미술관 개관전   집과 집 사이 - 철, 물, 흙

2015.11.28-2016.02.28 

총괄 기획 정상희 
 
참여 작가 강혁, 구본아, 김순임, 도지성, 이상하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인천광역시 동구 
후원 국민체육진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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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사이 - , ,
 
정 상 희 (우리미술관 총괄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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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언덕에 빼곡히 붙어 있는 판잣집들과 이들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집과 집의 벽이 하나로 붙어 있어 집 사이의 경계보다는 한 칸 한 칸 방으로 이어진 하나의 긴 집과 같은 마을. 괭이부리마을의 예전 모습은 이러했다. 이 안에서 피붙이처럼 마을의 주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나누며 삶을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한 가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시의 일생은 역사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괭이부리마을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IMF의 역사적 상황들과 노동자 숙소와 토막집으로, 단층에서 2층으로 또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그리고 재개발을 위한 철거라는 환경적 상황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골목과 좁은 한 칸 방에 쌓여 있는 과거와 현재는 더 이상의 미래는 없는 듯한 우울한 모습으로 철거되어가며 완전히 새로운 외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아무리 외형이 변해가도 그 안에 쌓여 있는 역사적 사실과 관계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외형과 그 이면의 역사적 증거는 서로 충돌하는 존재로 묻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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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사이 - , , >은 우리미술관의 개관을 알리는 전시이다. ‘집과 집 사이’, ‘’, ‘’, ‘은 모두 소통과 충돌의 공간으로서 괭이부리마을을 이해하기 위한 상징적 단어들이다. 만석동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황해도 피난민들, 그리고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의 농촌을 떠나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개항도시로서 인천의 복합적인 삶의 문화적 층을 만들어 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하나 둘 씩 모인 이들의 삶이 한 켜씩 쌓여갈 때마다 괭이부리마을은 충돌에서 소통으로 진입하고 또다시 소통에서 충돌로 이어지기를 반복해왔다. 100여년의 우리의 역사가 쌓이며 괭이부리마을이 하나의 소통의 충돌의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상징적 단어로서 집과 집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수많은 방으로 구성된 하나의 큰 집과 같았던 괭이부리마을은 오늘 날 집과 집 사이에 공동주택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세워지는 보존과 개발 사이의 딜레마 안에서 또 다른 소통과 충돌의 시간을 힘들게 겪어내고 있다.
다섯 명의 예술가, 강혁, 구본아, 김순임, 도지성, 이상하는 이와 같은 지역의 시간을 철, , 흙이라는 주제 하에 직접 걷고 만지고 냄새 맡고 수집하고 만나고 대화 나누며 경험하여 각자의 예술적 시점에서 읽어내고자 노력했다. ‘집과 집 사이에 이어 , , 은 이 동네의 장소 기억을 위한 2차적 상징적 요소들이다. 단순한 과거에 대한 상실감이나 회고의식에 머무는 것이 아닌 지역을 읽어내고 지금 시점에도 동네의 변화와 성장에 적극적인 역할을 행하는 상징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동네와 맞닿아 있는 철강단지와 부두의 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 의미는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돌멩이로 흙 위에 금을 그어 땅따먹기를 하며 놀았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없어지고 흙이 밟히던 골목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흙은 옛 동네의 사람 냄새나는 정겨움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삶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혁20여 년간 닻을 만들고 수리해 온 이른바 닻장인과의 만남에서 동네 이해를 위한 통로를 만들어왔다. 장인과의 만남과 대화는 작가 스스로가 그 시간을 통해 장인의 삶, 더 나아가서는 그의 생애만큼 동안의 동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과 오브제를 기반으로 한 공간 설치 작업은 닻과 닻장인의 모습으로 동네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강혁_닻사장 (화수부두 한현수) (Anchor), 디지털사진, 닻설치, 가변크기, 2015

김순임, 굴땅 The Space68, 가변설치,
굴껍질, 와이어, 종이테입, 블록, 2015


김순임은 한 때 괭이부리마을 일대 집의 기초를 다지는 용도로도 쓰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민들의 생계와 이어지는 굴 껍데기를 통해 지역과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다. 괭이부리마을 주변은 지금도 어디서든 쉽게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주로 삶에서 만난 자연재료를 주재료로 사용해 온 김순임에게 이 동네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굴 껍데기 수집은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굴까는 이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고 그들을 통해 굴 껍데기를 얻는 과정 자체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구본아, The Iron Life,
한지에 먹드로잉, 플래시영상, 2015
구본아는 철강단지의 발전과 함께 변화를 겪어 온 지역의 일생을 수묵이 지니는 물성을 통해 표현하며, 수묵 작품을 기반으로 한 영상을 통해 평면 안에 단순히 읽힐 수 있는 철의 이미지의 확장을 시도한다. 수묵과 영상으로 펼쳐지는 철의 강인하면서도 뜨겁고 때로는 차가운 복합적인 이미지는 동네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예술적 시점을 제시해준다.

도지성은 흙의 기억을 통해 동네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그에게 흙은 동네를 온전히 기억하도록 하는 단초가 되면서 동시에 기억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에 짓이긴 흙은 우연한 흔적과 의도적인 선을 통해 캔버스 위에서 더해지고 지워지는 과정을 거치며 동네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흙을 더하고 지우는 반복 과정을 거치며 생기는 물 자국과 흙 자국으로 얼룩지는 동네의 모습에서 흙 위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도지성_흙의 기억_100X65cm_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토분, 2015

이상하_양 - 나들이,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4
이상하는 더 이상 골목도 흙도 예전처럼 찾아볼 수 없는 동네에서 흙이 있는 곳을 찾아가며 소통을 시작했다. 집 앞에 만들어져 있는 폐자재를 재활용한 화단들이 그것이다. 비록 시멘트에게 자리를 뺏겨 사라지고 있지만, 집 앞의 화단에 심어진 각종 꽃과 채소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흙을 만났다. 팍팍한 삶 안에서 꽃과 채소를 심고 물을 주며 가꿔가는 마음을 조각을 통해 표현하며, 그 안에서 동네의 삶과 희망을 바라본다.
 
이들의 작품들은 미술관의 작은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다. 마치 과거의 집과 집 사이가 하나의 벽으로 틈 없이 이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각자의 예술적 시각으로 동네를 읽은 시도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노스탤지어로서 동네가 아닌,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이든 또 이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동네주민이든,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동네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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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도시의 가치를 재설정하고 환경주의와 삶의 질의 관계, 또는 지속가능성과 같은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한 도시재생의 개념과 함께 도시의 느리지만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경제적인 힘이 아닌 문화적 힘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는 이웃은 물리적 거리 범위를 기준으로 한 개인이나 지역공동체를 의미한다. 또한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을 기준삼아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물리적 거리의 근접은 친밀한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전제 조건 중 하나일 것이지만 오늘날 이러한 근접성만을 가지고는 이웃사이의 친밀함을 형성하기 쉽지 않다.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에게 친밀함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서투른 사회적 친밀함을 높이는 과정은 선입견과 불편한 판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해 진정성이 담긴 친밀함이 확장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통로를 기반으로 마주하고 기억한다면 또 다른 긍정적인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 칸 방이 삶 안에서 여러 기능을 행했던 것처럼, 동네 주민들의 작은 동네 미술관인 우리미술관이 이들의 삶의 한 편에서 작지만 여러 기능을 함께 하고자 조심스레 첫 발을 내딛었다. 또한 한 칸 방 안에 모든 세간들을 다 집어넣을 수는 없듯이, 우리미술관 역시 동네 주민들의 삶에 필요한 문화 예술의 세간들을 모두 한 번에 다 집어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괭이부리마을 일생의 작지만 중요한 변환기 한 편에서 동네 주민들과 손잡고 함께 천천히 사랑방으로서의 미술관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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